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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여러분, 간부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마시라

가이위사의 2023. 5. 11.

부당한 게 뻔히 보이는데 지시하는 지자체장 또는 간부 공무원들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간부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마시라'입니다. 자칫하면 단체장, 국장, 과장, 계장들은 다 빠져나갔는데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본인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죄를 옴팡 뒤집어쓴 신세가 됩니다.

시키는 대로 해, 책임은 내가 질게라는 말

"과장님께서 지시했던 ○○사업이 감사에 지적됐습니다. 상황이 심각한 것 같습니다. 도청에 계시니까 감사 파트에 계신 분들을 아실 테니 조치 좀 부탁드립니다."

2015년 강원도에 있던 김 모 과장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이었습니다. 분명히 읽음으로 표시되는데 가타부타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재차 보냈지만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2년 전 나는 과장의 ○○사업 지시에 부당함을 말했습니다. 그때 대화 내용은 이렇습니다.

"현지실사를 가 봤는데, 지시하신 사업지는 경사가 심해 붕괴 위험이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시키는 대로 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사업 내용은 강변 산속에 어떤 스님의 갤러리를 건립하는 것이었습니다. 특정 개인을 위한 사업 성격이 강합니다. 사업 예정지는 스님이 요청한 곳이었습니다. 문제는 경사가 너무 심하고 자갈로 형성된 산이라 붕괴 위험을 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갤러리를 지으라는 것입니다.


사업 타당성 검토도 무시하고 설계부터 착수했습니다. 설계사조차도 지질이나 자갈로 형성된 부지임을 들어 사업지 변경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과장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군수는 A 스님과 친분이 두터운 관계였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과거부터 이어온 인연이 아닌, 직(職)으로 인해 이루어진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스님은 군수에게 갤러리 건립 요청을 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제가 말을 돌리는데, 사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면, 속된 말로 '스님과 군수는 뭔가를 주고받은 관계'로 의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군수는 사업 담당 과장에게 지시를 했을 테고, 과장은 내게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질 테니 시키는 대로 하라'라고 했습니다. 당시 과장은 군수의 충복이었습니다. 군수는 6급 계장이었던 그를 3선 기간(12년) 중 4급(서기관)까지 진급을 시켰습니다. 보통의 경우 시군에서 12년은 6급에서 5급(사무관) 승진도 어려운 기간입니다.

사상누각, 공무원 여러분, 간부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마시라
사상누각, 공무원 여러분, 간부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마시라

내 메시지에 과장이 응답하지 않았던 이유

4급 승진과 동시에 과장은 도청으로 전출을 갔습니다. 부군수로 복귀하기 위한 발판입니다. 지자체에선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시군 과장으로 있다가 서기관 승진과 동시에 도청으로 나갑니다. 그러곤 2년 이내에 부군수로 화려하게 다시 들어옵니다. 이어 시장 군수로 출마, 그런 수순입니다.

서두에 쓴 메시지 내용은 과장이 도청에 있을 때 보냈던 메시지였습니다.

당시 감사는 도청 종합감사였습니다. 감사반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공직사회에선 '누군가 시켰다'라는 말은 자칫 배신자로 낙인찍힙니다. '구상부터 모든 과정은 내가 주도했다'라는 식으로 답변했습니다. 징계는 불가피해 보였습니다. 왜냐면 건축이 불가능한 지역에 갤러리를 짓겠다고 수억 원의 용역비와 설계비 등을 낭비했기 때문입니다. (과장의 지시로) 타당성 조사도 생략했습니다.

견책!
결국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견책 정도면 2년간 모든 표창이나 특혜에서 제외됩니다. 당연히 진급은 물 건너 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내가 과장에게 '살려달라'라는 부탁을 했을 때, 그는 대꾸(답글)를 하지 않았던 걸까요? 근거를 남기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만일 내가 인사위원회에서 '과장이 시켰다'라고 했을 경우 본인은 빠져나가기 위함이었습니다.

항상 기록을 남기는 습관

공무원을 꿈꾸는 분들, 그리고 현직에 계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는 절대 하지 마십시오! 특히 '모든 책임은 내가 질께!'라는 말에 넘어가선 안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지는 사람 한 명도 못 봤습니다.

부당한 지시 거부? 사실 계급사회에서 불가능한 일입니다. 반발을 하게 되면 속된 말로 조직에서 찍히게 됩니다. 헤어나기 힘든 상황까지 몰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운 좋게 감사에 안 걸리면 되지'라는 생각에 이행하게 됩니다.

맞습니다. 감사에 안 걸리면 지휘부로부터 인정도 받고 표창 등 신분상 혜택도 주어질 겁니다. 그런데 재수 없게 감사에 걸리면 모든 잘못을 본인이 옴팡 뒤집어씁니다.

군수가 시켰다 내지는 과장이 지시했다는 말은 자칫 배신자로 낙인찍힙니다. 그러니까 '모든 건 내가 주도했다'로 가는 겁니다.

 

해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지시를 받은 내용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말고 날짜와 시간까지 메모를 해 두는 겁니다. 또한 가능하면 페이퍼 근거를 만들어 두시기 바랍니다.

페이퍼를 만드는 방법은 전자 문서 생산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자 문서는 전산망에 기록되기 때문에 윗선에서 결재도 하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추진 상황 보고서 형태로 만들어 (지시한 사람이 과장일 경우) 전결로 받아 두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공직사회는 일반 기업보다 모든 부분에서 더디다는 말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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